국내에서 감도 높은 편집숍을 운영하는 대표 3인이 국내 디자이너에게 노하우를 공유하는 소통의 장이 마련됐다.
이동기(프레이트), 오인찬(에이트디비젼), 정성묵(아이엠샵) 대표가 8월 20일~21일 양일간 코엑스 더플라츠에서 개최된 국내 패션수주회 ‘2025 트렌드페어’에서 첫 날 열린 ‘감도 높은 셀렉샵, 감각 있는 브랜드’ 세미나(이하 토크쇼)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감각적인 편집숍과 브랜드 운영을 10년 넘게 이어온 인디씬(Indie Scene)의 개척자로 불린다. 대중적이지 않은 비주류의 카테고리를 주류 문화로 끌어올리는데 일조했다는 평가도 따른다.
3명의 대표 모두 작은 규모로 사업을 시작해 현재 국내 주요 백화점에서 매장을 운영할 정도로 사업을 확장시켰다. 정성묵 대표와 오인찬 대표는 아이엠샵(수원 본점, 총 6개), 에이트디비젼(명동 본점, 신세계강남)을 각각 운영하고 있고, 이동기 대표는 편집숍 프레이트(신사 본점, 총 5개)와 자사 남성복 브랜드 이스트로그, 언어펙티드를 전개하고 있다.
이들의 편집숍은 남다른 상품 소싱으로 젊은 세대에게 인지도를 얻고 있다. 이에 트렌드페어 주관사인 한국패션협회는 국내 디자이너들의 활로를 모색한다는 목적으로 이번 토크쇼를 마련했다.

이번 토크쇼에는 3인 대표가 편집숍의 브랜드 선정 기준과 사업 운영에 대한 인사이트를 참석자들에게 전달했다. 토크쇼 진행을 맡은 신희진 한국패션협회 이사는 “인기 편집숍으로 자리잡기에 있어 대표님들만의 남다른 브랜드 선정 기준이 궁금합니다”라며 질문과 함께 토크쇼 시작을 알렸다.
대형 유통사가 운영하는 편집숍을 제외하고 이들과 같은 강소 편집숍은 2010년 가장 많이 성장했다. 국내에서 생소한 해외 수입 브랜드들을 빠르게 소개한다는 점이 이들만의 강점이었다. 특히 이들이 소개하는 브랜드가 국내에서는 소수만이 아는 비주류 브랜드라는 점이 당시 대중적인 브랜드를 선호하는 기존 패션 기업들과 차별점을 만들었다.
하지만 강소 편집숍들은 국내 소비자들이 해외 브랜드를 온라인을 통해 직접 구매하기 시작하면서 자생력을 잃어 편집숍 규모가 대폭 축소됐다. 이에 해외 유명 브랜드를 유통하는 속도전이 끝난 만큼, 편집숍들은 새로운 브랜드 선정 기준을 통해 뾰족한 팬덤을 구축하는 것이 경쟁력으로 자리잡았다.

◇ 오인찬 “빈티지한 무드로 차별화”…정성묵 “일관된 방향성이 지속성 만든다”
오인찬 에이트디비젼 대표는 브랜드 선정 기준에 대해 “‘초지일관 에이트디비젼만의 기준을 지켜가고 있다’고 뚝심 있는 말을 말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패션 산업에서 특히 편집숍 사업은 변화하는 흐름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업 초기에는 브랜드 선정 기준이 새롭게 주목받는 브랜드를 빠르게 소개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편집숍에 맞는 트렌드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에이트디비젼은 가공을 통해 워싱이 돋보이는 빈티지한 무드를 표현한 브랜드들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기준이 변한 이유는 빈티지숍에서 출발한 에이트디비젼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다시 찾아가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명동에서 15년에 걸쳐 찾은 에이트디비젼만의 색깔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편집숍만의 기준이 명확해진 만큼, 패션 브랜드 역시 자신만의 독창적인 색깔을 만들어 가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정성묵 아이엠샵 대표는 “브랜드 운영자와 브랜드가 얼마나 닮아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는 아이엠샵이 브랜드를 선정하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다년간 브랜드를 바잉하면서 느낀 점은 제작자와 브랜드의 DNA가 일치할 때 비로소 지속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옆에 있는 이동기 대표가 전개하는 이스트로그의 제품을 보면, 브랜드 로고를 보지 않더라도 그의 브랜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트렌드 흐름에는 유연하게 대응하되, 브랜드의 지향점을 명확하게 알고 소비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동기 프레이트 대표는 패션 브랜드의 홀세일 비즈니스에 있어 이해도가 높다. 이는 이 대표가 브랜드 사업과 편집숍 유통 사업을 함께 병행할 뿐만 아니라 남성복 이스트로그를 2011년부터 햇수로 16년간 운영하면서, 해외 세일즈를 단 한 시즌도 빼지 않고 진행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이 대표는 패션 브랜드가 홀세일 유통 시작 단계에 있어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해 조언했다.
“홀세일 비즈니스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홀세일로 판매한 제품은 재고 부담은 지지 않는 대신 판매 가격에 대한 권한을 유통사에 넘기는 비즈니스입니다. 이에 브랜드가 납품받은 유통사보다 가격 경쟁력에서 밀린다면, 브랜드 리테일 전개에 있어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진 디자이너분들은 인기 있는 편집숍 유통을 통해 브랜드의 주목도를 높이는 효과만을 기대하는 게 일반적일 것입니다. 주목도보다 홀세일 판매 가격을 결정하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구축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결국 홀세일 사업 시작 전에 ‘어떻게 그들에게 판매할지’보다 판매하기 전에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 오프라인 공간, 판매 넘어 ‘경험 전달’로 역할 강화…진출 시점 브랜드 스스로 진단해야
한국패션협회는 토크쇼 참석 예정인 사람들에게 사전 조사를 통해 3인 대표에게 묻고 싶은 질문을 수렴했다. 이중에서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의 경우 오프라인 진출에 대한 물음이 가장 많았다.
이에 신희진 이사는 오프라인 진출 단계에서 주의점과 준비해야 할 점에 대해 물었다.
이에 대해 오인찬 대표는 “오프라인 매장이 단순한 판매의 기능을 넘어 브랜드 경험을 전달하는 역할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강력해질 것입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브랜드를 경험한 고객이 온라인을 통해 구매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소비자가 오프라인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효과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고 말했다.
이어 이동기 대표는 “오프라인의 무리한 확장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브랜드가 오프라인 진출 시점이 맞는지 스스로 진단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브랜드 경험 공간도 중요하나 판매로 이어지지 않으면 지속성을 가질 수 없어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컬렉션 스큐가 적은 소규모 브랜드라면,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채널에서도 충분히 좋은 성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라고 말했다.

신희진 이사는 토크쇼 마지막 질문으로 다년간 사업을 이어온 비결에 대해 물었다. 패션 브랜드 사업은 매출뿐만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를 좋게 유지하는 것이 사업이다.
이에 3인 대표에게 안정적으로 천천히 성장할 수 있었던 노하우와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해 물었다.
정성묵 대표는 “힘든 시기에도 나아가려면 매출 성과와는 별개로 자신만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연료를 만들어야 합니다. ‘매출은 브랜드의 성적표’라는 말에 일부 동감하지만, 성과에만 몰입한다면 지속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대표가 짊어져야 할 부담도 함께 커지기 마련입니다. 또한 패션 사업은 숫자만을 바라보기에는 아쉬운, 낭만 있는 비즈니스라고 생각합니다(웃음). 저 역시도 사업을 다년간 운영하면서 항상 만족스러운 결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목표로 설정한 기준에 못 미치는 경우가 10번 중 9번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렵게 달성한 그 1번의 경험이 지금까지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한편, 토크쇼가 열린 ‘2025 트렌드페어’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하고 한국패션협회(패션협, 회장 성래은)가 주관하는 국내 패션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을 위한 ‘글로벌 브랜드 육성 사업’의 일환으로 전시 및 수주회, 세미나, 패션쇼 등이 동시에 개최되는 행사이다.

올해는 8월 20일부터 21일까지 양일간, 80여 개 브랜드가 참가한 가운데 코엑스 더플라츠에서 국내외 패션 관계자, 글로벌 바이어, 국내 대형 유통사, 유명인사, 인플루언서, 프레스 등 많은 인파가 몰려 성공적으로 개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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